학습

[서평 No. 6] 글자전쟁 (by 김진명)

노력형 곰돌이 2021. 7. 9. 12:32
반응형


최근 김진명 작가의 미중전쟁이라는 소설을 읽고, 바로 또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게 되었다. <글자전쟁>이라는 말만 봐서는, 이것이 정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는 쉽지 않지만, 소설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.

나를 비롯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한글을 사용하는 탓에, 한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. 김진명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자 이와 같은 소설을 작성한 것 같다. 즉, 한자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, 우리의 선조와 같다고 생각되는 동이족이 먼저 한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. 이 책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말해주기보다는 소설 속의 또 다른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. 그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해서 그런지, 책을 읽어가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. 이 책의 상당 부분이 흥미롭고, 인상 깊었지만, 그 중에서 몇 부분만 감상문에 남기고자 한다.

弔(조)라는 글자는 이 책의 초반부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. 이 글자 말고 다른 ‘조’는 집에 수건을 걸어둔 형상으로, 사람이 수건을 쓴다는 것은 문명의 발전을 의미하고, 풍장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弔보다는 더 문명화된 사람들이 쓰는 글자라고 하였다. 소설 속에서는 문명화된 사람들이 야만족들의 나쁜 풍습이라고 할 수 있는 풍장을 없애고자 의도적으로 弔라는 한자를 없애고자 하는데, 여기에서 작가는 문제를 던진 것 같다. 야만인은 문명인보다 먼저 존재했던 것이고, 그들이 사용하는 한자는 문명인이 사용하던 한자보다 먼저 나온 것이다. 하지만 문명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한자의 창시자라고 하며, 그 논리로 야만인들의 한자를 없애고 있는 것이다. 그들의 입장에서는 ‘예(禮)’를 뿌리박기 위해서는 추악한 글자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. 예를 숭상하고, 본보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, 잔인한 행동을 한 것이 정말 무섭다고 생각되었다.

소설 속 소설에서 ‘을파소’는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. “이것은 침략이다. 창과 칼의 침략보다 천 배는 무서운 침략. 천년이 흐르도록 우리를 지배하고 천하를 발밑에 두겠다는 무서운 음모를 가진 침략이다. 천하의 온 사람들로 하여금 저들을 흠모하고 숭배하게 하며, 스스로를 멸시하게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침략이다.” 어찌 보면 중국을 지나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, 중국인들의 중화주의사상을 보면, 이와 같은 스토리가 전혀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. 같은 맥락에서 나는 김진명 작가의 필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.

주인공인 이태민은 원래 무기 브로커로써 500억을 모아 해외에 나가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한, 머리는 좋으나, 마인드는 별로인 사람이었다. 글을 읽는 중에 나는 뭐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의구심을 품었으나, 시간이 갈수록 그가 변화하는 것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. 그는 중국에서 우연히 이 소설의 작가에게 파일을 전해 받고, 이 소설을 세상에 공개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. 그 과정에서 중국 교수들과 언쟁도 벌이고, 중국 도서관에 가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. 이 모습을 보며, 과연 우리들은 사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 있었다. 무조건적으로 돈 또는 여가만 좇으며 사는 것은 아닐까? 마음 편하게 책을 읽다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, 갑작스레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했었다. 덕분에 반성을 하고 내 일에 좀 더 애착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하다.

10만 개가 넘는 한자 중에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자는 몇 개 안 되는 것이 사실이나,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. 더욱이 나로써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. 이 소설의 내용대로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, 그리고 학문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.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중국 정부와 큰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.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그 정도 마찰은 불가피하지 않을까? 어찌보면 김진명 작가는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화두를 던져주고, 직접 생각해본 후,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은 직접 연구를 해보길 권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.
이 책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, 한 권의 책에 이와 같이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 쌓여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대박이 나는 작가는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. 나도 김진명 작가와 종사하는 업종은 크게 다르지만, 내가 맡고 있는 업무를 최대한 자세히 파악하여, 해당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부단히 노력을 해야겠다.

반응형